모든 경제는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가가 전혀 오르지 않는 것보다는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물가상승이 통제 불가능하는 수준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국가경제가 부도나는 사태가 발생할 수 도 있습니다.
최근 감염병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재정지출을 늘리게 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 사태가 오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정의, 원인과 결과 등을 알아보고, 그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정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뛰어넘을 초'라는 뜻의 '하이퍼(hyper)'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로서, 물가가 단기간에 엄청나게 치솟는 것을 하이퍼인플레이션(=초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경제학자 필립 케이건은 저서 "The Monetary Danamics of Hyperinflation"에서 물가가 한 달 내에 50% 이상 오를 때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기준은 그렇지만, 통상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이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고도 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5~7% 물가상승률에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들먹이는 등 조금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경우를 보면, 50%로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기하급수적으로 물가상승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루 또는 심지어 몇 시간 내에 급격하게 상승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원인 및 결과
1. 원인
가장 큰 원인은 '국가 전쟁' 및 '국가 부도' 또는 '국가의 방만한 운영' 등으로 인해, 정부가 돈을 많이 찍어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필요 없는 씀씀이들을 줄여야 하는 게 정석입니다. 그렇지만, 중앙은행에서 돈을 찍어내는 쉬운 길을 택하는 순간 장기적으로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2. 결과
정부가 돈을 많이 찍어내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면, 국민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일단 화폐를 기반으로 한 '물물거래'가 붕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이 폐쇄되어 실업률이 증가하게 되고, 결국엔 세수 감소로 이어지게 되어 국가경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대표적인 국가로는 독일 및 최근에는 짐바브웨이 그리고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가 있지만, 그동안 헝가리, 오스트리아, 폴란드, 브라질, 그리스 등 많은 국가들이 비슷한 위기를 경험하였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사례
1. 조선시대 하이퍼인플레이션
우리나라에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조선시대 말에도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있었습니다. 당시 화폐 단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상평통보(엽전) 1개 -> 1푼
- 상평통보 10개 -> 1전
- 상평통보 100개(10전) -> 1냥
조선 후기 고종 즉위 당시에는, "약 7냥"이면 쌀 한 섬(약 80kg)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화폐가치로 따져보면, 요즘 20kg 쌀 한포대가 대략 5만 원 정도이니, 쌀 한섬(80kg)이 대략 20만 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즉, "7냥 = 20만 원"정도 이므로, "1냥 = 28,500원"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1866년 고종 3년,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당백전'이라는 새 화폐를 약 1년 동안 1,600만 냥을 만들어냈습니다. 토목 건설비, 국방비 등 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당백전'이라는 엽전을 하나 만든 후, 이게 "상평통보 100개(1냥)"과 동일한 가치의 화폐라고 공표하고 이를 강제로 유통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돈이 크게 늘어나게 되어, 순식간에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가 폭등하게 되었습니다. 7냥 하던 쌀 한섬의 가격이 45냥으로 수직 상승하면서, 백성들의 생활고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2.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독일에서 발생하였습니다. "1914년부터 ~ 1918년 까지" 대략 5년간 이어졌던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빌렸습니다. 게다가 전쟁에 패배했던 독일은 '독일 GDP의 1.4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전쟁배상금은 막대한 재정적자로 나타났고, 독일 정부는 급기야 '재정적자'를 당시 화폐였던 '파피어 마르크'를 발행하여 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시장에 이렇게 많은 화폐가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가는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게 되었습니다. 물가는 특정 기간 동안 하루에 20% 넘게 증가하였으며, 1919년부터 ~ 1922년 까지(3년간) 독일의 물가는 약 1조 배 올랐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 무시한 상승률입니다. 독일 화폐가 얼마나 쓸모가 없어졌냐면, 이 당시에 일부 시민들은 집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지폐를 태우기도 했답니다. 그것이 나무를 사는 것보다 더 저렴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늘 높이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독일 정부는 1923년 정부 공무원들의 삼분의 일을 해고하고, 중앙은행은 '라이히스 뱅크'에서 '렌텐 뱅크'로 교체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피어 마르크' 대신에 '렌텐 마르크'라는 새 화폐를 도입하여, 기존 파피어 마르크와 "1조 : 1"의 비율로 화폐교환을 실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중앙은행은 재정적자를 화폐를 발행하여 보전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렇게 독일은 1923년 강력한 재정개혁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3. 짐바브웨
짐바브웨(Republic of Zimbabwe)는 아프리카 동남부에 위치한 인구 1,500만 명 정도의 아름다운 내륙국가입니다. 북쪽으로는 잠비아와 남쪽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인접해 있습니다.
1965년까지 영국의 자치 식민지였으나, 그 해 백인 소수정부가 일방적으로 로디지아(Rhodesia)라는 국명으로 독립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수의 백인들이 정권과 모든 것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독립이라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후, 국제적인 고립과 흑인 민족주의자들의 내전을 치른 다음, 1979년 평화조약에 의해 1980년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국가 '짐바브웨'가 탄생하였습니다.
독립 이후 짐바브웨의 경제는 모든 부분에서 상당히 안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시작된 대통령 '무가베'의 장기집권과 권력 사유화의 영향으로 경제 붕괴가 시작되었습니다. 짐바브웨 정부의 정책 실패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토지개혁 정책입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토지가 없는 흑인들에게 토지를 재분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백인 소유의 토지를 몰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지 몰수에 대한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방국가들은 짐바브웨의 인권유린 등을 문제 삼아 경제적 제재를 가해 짐바브웨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백인들에게 몰수한 토지를 대통령인 '무가베' 지지세력에게 분배해주었지만, 이들은 농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농업생산성을 더욱 떨어뜨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국가경제의 근간이었던 농업이 급격하게 쇠퇴하였고, 정부 재정도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재정상태가 악화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 통화량이 증가하게 되면서 물가는 치솟고, 인플레이션이 급속하게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브 H. 핸키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2008년 11월에 월 796억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합니다. 당시 짐바브웨 사람들은 상점에 가려면 돈다발을 수레에 싣고 다녀야 했습니다. '100조 짐바브웨 달러'를 들고 가도 달걀 세 개 밖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짐바브웨의 화폐개혁정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에는 2009년부터 자국 화폐 사용을 중단하고 모든 거래를 미국 달러로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통화주권 포기 선언'을 한 것입니다. 유통되는 달러가 부족하긴 했지만, 달러의 사용과 함께 물가는 안정 수준으로 돌아섰지만, 국가경제는 이미 파탄이 난 상황입니다.
이렇게 짐바브웨는 21세기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가장 먼저 경험한 국가이며, 역사상 두 번째 최악의 인플레이션 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4.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 원유 매장량 1위의 산유국입니다. 막대한 석유 매장량 때문에 베네수엘라는 20세기 동안 건강한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석유에만 의존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본 산업은 매우 취약하고 석유에만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후고 차베스' 대통령 때부터입니다. 그는 본인의 지지기반인 빈민층을 위하여 '포퓰리즘 복지정책'에 대한 엄청난 지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해외에서 물자를 수입하여 국민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는 복지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저렴하게 제공을 하다 보니, 자국 기업들은 매출이 급감하여 대부분의 기업은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됩니다. 기업들이 이렇게 무너지게 되자, 정부는 급하게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외자본은 베네수엘라에게 더 이상 투자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대거 빠져나가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잘 나가던 원유시장이 2015년 기준으로 불황에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원유 가격이 반토막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은 미국의 제재로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이렇게 원유 수출에 의한 재정수입이 크게 감소하자, '차베스'를 이은 '마두로' 정권은 대량으로 돈을 찍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아실 겁니다.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2014년 69%에서 2015년 181%로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2016년에 시작되어, 연말까지 800%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2017년에는 4,000%, 2019년 초에는 260,000,000%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게 됩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물가상승률입니다. 지금까지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글을 마치며
이번 시간에는 물가가 단기간에 엄청나게 치솟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정의, 원인 및 결과 그리고 그 사례들까지 모두 알아보았습니다. 사례들을 보면 모두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재정악화가 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무분별하게 찍어내어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는 매우 빠르게 치솟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을 함께 지켜봤습니다.
세계 금융위기 및 최근 감염병 사태에도 대부분의 국가는 엄청난 양의 통화를 시중에 다량 풀었습니다. 돈을 계속 찍어내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대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해결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국가경제에서 물가안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부디 현명한 경제정책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 및 "디플레이션"의 위험에서 벗어나, 물가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